만남, 인연,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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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은 마치 보이지 않는 운명의 끈에 이끌리듯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 인연이 기쁨과 따뜻함을 안겨주는 축복이라면 최고의 만남이 될 수 있고, 또한 인생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거라고 믿는다. 불교의 윤회설에 따르면, 생명 있는 존재가 사람으로 태어나기까지는 8천4백만 번의 윤회를 거듭한다고 했다. 이 얼마나 아득하고도 신비로운 수치인가. 그만큼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귀하고도 소중한 일이며, 우리는 그 삶의 여정 속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만남과 이별을 겪으며 살아간다.
사람과 동물 사이에 맺어진 인연 또한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끈끈한 정으로 엮어진다. 나는 세상의 수많은 개 중에서 우리 가족과 특별한 인연으로 호주에서 만났던 아론과 에스키모를 추모하며 이 글을 쓴다. 지난 주말, 에스키모가 15살의 생을 끝내고 무지개다리를 건넸다. 그리고, 아론이는 몇 년 전에 16살에 내 품에 안겨서 하늘나라로 갔다. 아론이는 말티즈 종으로 동그란 검정 눈이 빛나며, 하얀 털이 복실거리는 사랑꾼 이었고, 에스키모는 사모예드 종으로 북극곰처럼 덩치가 크고 온몸이 비단결처럼 부드럽고 푹신한 털을 가진 행복꾼 이었다. 사랑꾼과 행복꾼이 떠난 빈자리가 너무 커서 아직도 어떻게 그 자리를 메꿔 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아론이는 화장한 후에 자주 산책을 다니던 강변 공원의 포인티아나 나무 아래에서 영원히 잠들었다. 그리고 에스키모도 형제처럼 그 옆에 함께 나란히 머물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도 가슴이 아리고 아파져 온다. 어린 자식을 돌보는 마음으로 그들을 지켰고, 그들은 또한 나를 위로해주며 다른 사람에게도 행복을 나눠주었다. 에스키모와 산책하러 나가면 유명세를 단단히 치러야 했다. 에스키모의 멋있는 외모에 지나가던 행인들이 사진찍기를 요청할 때가 많았다. 그리고 에스키모는 실제로 개 세라피 훈련을 받아서 증서도 받았다. 딸의 회사에서는 마스코트가 되어서 전 직원들이 단체 사진을 찍을 때, 앞자리 가운데에 당당하게 앉아서 한 몫을 차지한 직원이 되기도 했었다. 너무 그립다.
무지개 다리 앞에서 나를 기다릴 너희들을 떠올리며, 이별은 사라짐이 아니라 사랑의 또 다른 형태임을 알게 된다. 우리들의 인연, 만남, 그리고 일곱 빛깔로 채색된 다리 위에서 곱게 물들었을 너희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사랑하는 아론아, 에스키모야, 나는 너희와 함께했던 그 기쁨의 순간들과 가슴이 벅차도록 가득했던 행복을 늘 마음 한 켠에 품고 기억할 거야."
법정 스님의 『오두막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날이 갈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가 멀어져만 간다. 자주 만나 이야기하면서도 그저 건성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일은 없는가.”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마음이 조금 씁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분명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함께 있지만, 서로의 마음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개인주의 사회에 사는 듯하다. 삶이 바빠지고 마음은 지쳐가며, 사람 사이의 대화는 겉돌고, 관계는 자주 닫힌다. 그런 시대 속에서 사람보다 개와의 관계 속에서 위안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는 세상이 되었다.
개는 말이 없지만, 그 침묵 속에 위로가 있다. 곁을 지켜주고, 눈빛 하나로 마음을 나누는 존재. 그 따뜻한 눈길은 잊고 지내던 감정을 다시 꺼내주며 미소를 짓게 한다. 개를 돌보는 일은 단순한 애완이 아니라, 서로를 돌보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책임감과 정서적 안정, 작은 성취감과 여유가 그 안에 깃들어 있음이다. 사람 사이의 거리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때로는 개와의 조용한 교감으로 채워지는 때가 많다. 말없이 내 곁에 머무는 존재가 나를 다시 사람답게 만들어 주기에. 때로는 말보다 깊은 이해와 위로가 필요할 때, 그 작은 존재가 내게 전하는 무언의 신호들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새삼 깨닫는다.
이제 먼 길을 떠난 아론이와 에스키모, 이별의 슬픔에서 쉽고 빠르게 벗어나지는 못하겠지만, 그 애틋한 순간들은 마음 깊숙이 스며들어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굳어질 것만 같다. 떠남과 남음 사이에 남겨진 허전함은 서서히 삶의 한 조각이 되어, 언젠가는 이 그리움이 따뜻한 기억으로 나를 온전히 채워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다.
아론
에스키모
글 : 황현숙(칼럼니스트)